도자기란? 도기 청자 분청사기 백자 옹기 다완
 
 
 
 

  중국에서 옥(玉)은 군자(君子)를 상징하며 부귀(富貴)와 사후내세를 보장해주는 신앙적인 의미를 지녀 영생을 의미하며 악귀를 쫓는다고 믿어 부장품으로 많이 사용하였다.

당시 지배계급의 옥에 대한 소유 욕구와 부모 묘에 옥을 부장하려는

 

사람은 많았으나 ,옥은 생산이 적어 매우 비싸 귀한 옥을 흙으로 만들어 보려는 노력중 전국시대를 거쳐 삼국시대에 청자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9C경 중국의 호족(濠族)들에게 널리퍼진 불교의 선종(禪宗)이,좌선(坐禪)을 하는데 정신을 맑게 하기 위하여 차를 마시는 습관이 확산되면서, 청자를 찻잔으로 사용하며 실용화 되기 시작하였다.

차는 단순한 기호식품이 아닌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는 길로써 마셨다. 따라서 차를 마시는 찻잔은 아주 중요한 것이었고, 그 찻잔은 금값보다 비싼 귀중한 것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9C경 통일신라 말기 선종이 유입되면서 중국을 다녀온 선승(禪僧)들을 통하여 중국의 찻잔이 유입되기 시작되었고. 고려초 청자를 국산화하려는 노력중 10C후반 청자를 생산하기 시작하였다. 그후 질이 좋은 흙을 찾아 전라도 강진,고창에서 우수한 고려청자가 생산되기 사작한다.

 
 
 

자연스러운 선과 세련된 형태, 요란하지 않으면서 운치있는 문양, 은은하고 투명한 비취색 등이 고려청자의 특색이다. 청자가 투명한 비취색을 띠기 시작한 것은 11세기 말부터이며 이 시기부터 청자의 형태 또한 세련된 미적 감각을 보이고 있다. 고려청자는 12세기 전반기부터 맑은 비취색과 세련된 모습으로 그 미적, 기술적 수준이 최고 절정에 다다른다. 12세기 전체를 통틀어 순청자가 우수한 품질을 계속 유지하는 한편으로 12세기 중엽에서는 상감기법과 문양에 있어서 가장 세련된 시기로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14세기 중엽부터는 청자의 생산이 점차 줄어들게 되고 대신 분청사기가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순청자는 청자에 상감이나 진사 등의 기법을 넣지 않은 순수한 청자로 화려하지는 않지만 은은한 비취색과 새겨넣은 문양, 빚은 모양 그대로 자연스러움과 멋스러움을 풍긴다. 9~10세기 무렵 청자의 초보형태로 나타나기 시작하여, 12세기 초반에 청자소 문과형병과 같은 우수한 청자로 발전하였으며, 후에 상감청자로 발전하였다.